미국 은행발(發) 금융불안으로 인한 안전자산 선호 심리에 원·달러 환율이 5개월 만에 1340원을 돌파하는 등 원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무역적자까지 이어지고 있는 데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에 따른 한미 금리차 확대 등으로 당분간 원화 약세가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연준의 금리인상 막바지에 달하고 있는 반면 유럽연합(EU)은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원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9일 서울 외국환중개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27일 거래일 보다 1.7원 상승한 1338.0원에 거래를 마치면서 2거래일 연속 연고점을 경신했다. 26일에는 장중 1340원을 넘어서면서 장중 고가 기준으로 지난해 11월 29일(1342.0원) 이후 5개월 만에 1340원을 넘어섰다.
최근 미 달러화가 대체적으로 약세 흐름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화도 동반 약세를 보이고 있는 등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달 미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이후 미 달러화는 1.5% 가량 절하됐는데 선진통화 대비 미 달러 약세 폭은 2.3%에 달한 반면, 신흥통과 대비 약세폭은 0.7%에 불과해 상대적으로 신흥통화에 대한 투자심리가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미 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 미-중간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 미 은행권 불안 등으로 인한 위험자산 투자심리 약화로 당분간은 원화 약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2분기부터 무역적자가 개선될 가능성이 높고, 유럽연합은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갈 가능성이 있어 원화가 다시 강세로 돌아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미 금리 격차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점은 원화 약세로 작용할 전망이다.
채권 시장 전문가들은 미 연준이 오는 2~3일(현지시간) 열리는 FOMC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시장 컨센서스도 다음 주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어 예상에 부합할 경우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 있다. 이번 회의에서 연준이 금리를 추가로 인상하면 미 정책금리는 5.0∼5.25%가 된다. 이는 연준 위원들이 올해 전망한 목표 최종금리 중간값 수준에 근접한 것으로 긴축 기조는 마무리에 접어들었다고 봐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다만, 미 인플레이션이 둔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고 특히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물가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 6월에 한 차례 더 올리는 등 추가 인상 가능성도 대두 되고 있다.
또, 노동시장이 여전히 견조하고 인플레이션 경계감도 이어지고 있는 점은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 다음 달 FOMC에서 추가 금리 인상의 여지를 열어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시장 내 기대 인플레이션이 다시 높아질 경우 높은 물가와 경기 위축이라는 이중고를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이후 은행들이 대출 기준을 강화하고 있는 점이 어느 정도의 긴축 효과를 냈는지 아직 판단하기 어렵고, 이로 인한 성장 둔화도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은 추가 인상을 어렵게 하고 있어 향후 통화정책 방향을 놓고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대비 1.1% 증가했다. 이는 시장 컨센서스 2.0%를 큰 폭 밑도는 수치다. 고강도 긴축이 지속되면서 지난해 4분기(2.6%) 이후 한 분기 만에 성장세가 급격하게 식었다.
다음 주 유로존에서도 통화정책 회의가 예정돼 있다. 물가 우려에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해 4.0%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기선행지수가 반등세를 보이고 있고,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체감경기 개선이 지속되고 있다. 반면, 유로존의 헤드라인 물가 상승률이 둔화되고 있음에도 근원물가는 여전히 오름세를 보이고 있어 고강도 긴축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유로존 모두 다음달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서지만 연준은 금리인상이 막바지에 다다른 반면, 유로존은 좀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유로화 통화 강세로 이어져 원화에도 강세로 작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다음 달 발표되는 4월 미 소비자물가 상승률 등에 따라 연준의 통화정책도 달라질 수 있어 원화 변동성이 당분간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5 월 중 발표될 4 월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 둔화가 예상보다 더딜 가능성이 높고, 낮은 실업률 수준과 지표들이 혼재된 흐름을 보이는 만큼 6 월 FOMC 추가 금리 인상 여부를 둔 논란은 계속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5 월 FOMC 에서 금리 인상 이후 동결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지만 통화긴축 관련 불확실성은 당분간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경기 모멘텀 측면에서도 미국이 유로존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려가 높아 환율 측면에서 보면 유로화 강세, 달러 약세 흐름이 유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금융시장 내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커질 수 있어 달러의 약세가 제한될 수 있다”며 “달러가 좁은 레인지에서 상승과 하락을 반복할 수 있고, 원화 입장에서는 달러의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펀더멘털과 대내외 금리차, 대외 불안 요인에 좀 더 민감하게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무역적자가 이어가고 있는 등 수출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점은 원화 약세로 작용할 수 있다. 최근 달러 약세에도 불구하고 원화가 기타 통화대비 유독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다음 달 1일 발표되는 4월 한국 수출입 동향에서 마이너스 수출과 무역적자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다만, 수출이 2분기를 저점으로 점차 반등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수입도 당분간 에너지 가격의 역(-)기저효과로 인해 감소 폭이 커지 등 무역적자가 줄어들 전망이라는 점은 원화 약세를 줄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안전자산 선호심리로 인해 전반적으로 미 달러화가 약세 흐름을 보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원화가 동반 약세를 보이고 있다”며 “유럽연합과 일본은행(BOJ)은 양호한 경기와 높은 물가를 바탕으로 긴축적 통화정책을 장기간 이어갈 수 있어 달러 약세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국내 무역적자 폭이 앞으로 축소될 가능성이 높아 원·달러 환율이 1350원까지 올라간 후 다시 1300원 초반 수준으로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출처: block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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